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 2023.
원작 웹툰
김숭늉, 유쾌한 이웃, 유쾌한 왕따(2부), 2014-2016.
영화 속 책
박해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2011.
# 씨네21 감독 인터뷰: 아파트에 관해 공부하다가 책 <콘크리트 유토피아>까지 닿게 됐다. 아파트를 소재로 한국 사회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영화의 가제로 달아두었다가 주제적으로도 맞닿아 있는 제목 같아서 저자인 박해천 선생님께 연락드렸다. 제목으로 사용하라고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이 책의 제목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았다.
( 출처: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01827 )
비평문 중 일부
대재해라는 상황 속에서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버리는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도균과 명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도덕적 판단을 포기하고 책임을 외면하려 한다.
#1 외부인들 거취 문제에 대한 회의에서
(명화) 그래도 다 같이 살 방법을 먼저 찾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박 소장) 다 같이 살자는 거예요? 다 같이 죽자는 거지?
(금애)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요. 우리가 지금 가진 게 빤해요. 말은 쉽죠. 나날이 사건, 사고에. 오늘 아침에 보셨잖아요. 우리 가만히 있는다고 그쪽도 계속 그렇게 나오리란 법 있어요?
#2 투표로 외부인 퇴출이 결정된 후
(민성) 어떻게 하겠지, 뭐
(명화) 그러니까 어떻게? 그리고 내보내면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민성) 에이, 몰라, 그만 생각하고 자자. 어디 또 갈 데가 있겠지. 여기도 안 무너지고 있었잖아. 안 그래?
#3 방범대가 밖에서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명화는 민성에게 밖에서 사람을 죽였냐고 묻고, 앞으로 방범대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명화) 김민성 너 그렇게 남 해치고도 마음 편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못 돼, 망가진다고.
#4 세범이 도균의 집을 뒤져 외부인들을 찾아낸 후에
(민성) 그래. 사람 하나라도 더 살리는 게 네 직업이고 네 마음이고 너고, 알아. 아는데,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게 있는 거잖아. 지금이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명화) 어쩔 수 없다는 게 뭐야? 어쩔 수 없으면 이래도 돼? 사람이 어떻게 그래! 오빠 지금 이상해지고 있어. 그 대표인가 뭔가 하는 그 사람처럼.
‘어쩔 수 없다'. 생각할수록 명쾌한 답은 없고 피곤해지기에 결국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이럴 때 가장 편리한 선택은 누군가의 결정을 따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주민 대표로 세범을 내세우고 그를 따른다. 하지만 도균은 다르다. 군필자 위주로 방범대의 조장이 될 사람을 정하지만 도균은 몸이 안 좋다며 빠지려 한다. 외부인을 적으로 취급하고 해하는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그런 식으로 하나둘씩 빠지면 다 빠진다고 비난하지만 도균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세범과 민성 그리고 다수의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숨어 있는 ‘바퀴벌레’, 즉 외부인 무리를 색출하고 그들을 숨겨준 주민들에게 치욕스러운 처벌을 내린다. 그 순간 도균은 외친다.
(도균) 사람들이 이러면 안 된다. 아무리 세상이 이 지랄이 났어도!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하면 안 되는 일이 있고…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도균은 결국 죽음을 택한다. 사실상 황궁아파트 공동체가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도균의 비극적인 죽음 후, 이전까지 민성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도균에게 자신의 보급품을 나눠주는 식으로 공동체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던 명화는 세범의 정체를 파헤쳐 그를 주민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리겠다 결심한다. 혜원의 도움으로 902호에서 영탁의 시체를 찾고 결국 주민들 앞에서 세범의 정체를 폭로한다.
이후 벌어진 처참한 혈투 속에서도 명화는 살아남고 생존자들과 동행한다. 어쩔 수 없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한 명화의 생존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느끼게 한다. 더불어, 재난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외면해온 수많은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과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명화는 현실감각이 부족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책임의식과 인간성을 지켜낸 인물이다. 건축이 자본주의 논리 앞에서 공공성이나 공동체성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잃어갈 때, 이를 단순히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명화의 태도를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