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대상: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배경 서적:
슬라보예 지젝의 ‘Hegel in a Wired Brain’ 중 5장 ‘The Fall that Makes Us Like God’
레나타 살레츨의 ‘A Passion for Ignorance’ 중 5장 ‘Love is Blind’
몰리 앤 로덴버그의 ‘The Excessive Subject’ 중 서문 ‘The Excess of Everyday Life’와 6장 ‘Zizek’s Political Act’
헤겔은 원인의 결과가 소급적으로 자기 자신의 원인을 생산하는 자기정립의 순환을 ‘절대적 되튐(absolute recoil)’이라고 불렀다. 이에 지젝은 헤겔이 절대적 되튐이라고 묘사한 자기 관계적 행위에서 주체는 자신의 존재 원인 자체를 소급적(retroactive)으로 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정신의 영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신을 정의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지젝에게 정신의 자기정립은 단순한 사용자의 환상이 아니고, 그 자체의 현행성을 가지며 실재적인 효과를 낳는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주체는 원천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알 수 없는 세상에 던져져 실패와 자기부정의 과정을 통해 소급적으로 자기정립되는 것이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나타난 주요 등장인물의 삶을 살펴보며 소급적 자기정립의 과정을 분석해 보자.
샬린에게
그림자 너머에서 인사를 보낸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지만 오랫동안 편지를 쓰고 싶었단다
가끔 자다 깨서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생각할 때마다 미칠 것 같아
가족과 떨어진 채 난 평생 거짓말을 해 왔어
강한 척 거짓말하고, 죽은 척 가장했지
그렇게 거짓을 늘어놨으니 이젠 너무 늦었겠지
행복하니? 사랑받고 있니?
크면 뭘 할 거니? 내가 했던 것처럼 세상을 바꿀 거니?
우린 실패했단다
하지만 넌 해낼지도 몰라
어쩌면 네가 세상을 바로잡을지도
매일 네 생각을 한단다, 하루도 빠짐없이
우릴 위해 내가 강해졌어야 했는데
언젠가 적절하고 안전한 때가 오면 네가 날 찾아낼 거야
아빠에게 나 대신 키스해 주렴, 나의 게토 팻
사랑하는 엄마, 퍼피디아가
(…) 밥과 딸을 떠났고, 동료들을 배신했으며, 정부가 제공한 주류 사회로부터도 벗어나길 택했던 퍼피디아는 16년이 흐른 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생각할 때마다 미칠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녀는 전혀 미칠 것 같지 않아도 된다. 혁명도, 가족과 동료와의 관계도 모두 실패했지만 삶의 의미는 실패를 통해서만 소급적으로 정립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녀는 과거에 혁명의 길을 택했기 때문에 지금 딸에게 후회와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보낼 뿐이다. 만약 그녀가 그때 가족을 택했더라면 그녀는 지금 후회에 가득 찬―어찌 됐든 후회에 가득 찬다―혁명선언서 같은 것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그녀는 후회하는 대신, 현재의 위치에서 과거의 행위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해주면 된다. 이것이 바로 실패를 통해서만 가능한 소급적 자기정립의 과정이다.
레나타 살레츨이 말하는 ‘ignorance(무지)’는 모르는 것을, ‘ignoring(무시)’는 알은 체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알고 싶지 않은 마음(a passion for ignorance, 라캉이 불교학에서 가져온 용어이다)’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의식적으로 밀어내는 태도를 말한다.
(하워드) 속까지 썩었다는 걸 이제 알게 됐는지도
자치 정부라는 고귀한 실험 말이야
다보스 같은 억만장자들의 게임이지
노골적인 인종차별 우생학 신봉 나치들
민주주의는 잘 시간이야, 동지들
이제 지친 것 같다고? 잘됐네
B-Q-W-5-L-P-A, 말해
현장에서는 매일 조직적으로 노력하고, 전략적으로 저항하고, 헌신적인 팀워크를 유지해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에서 가치를 빼앗고 있는 자본주의 지배자들에게 맞서 싸우고 있지
말해 봐
여기가 무슨 페이스북인 줄 알아?
인스타그램에서도 이게 될까? 이런 해시태그가 유행할까?
그럴 리가 없지
잊지 마
여긴 피난처를 제공하는 국가라는 걸
그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마
서로 별개로 여기지 마
그 둘은...
프렌치75의 메시지에 동의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을 제외한 모두는 견디기 힘든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
(…) 사회 불평등은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이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가치를 빼앗고 있는 자본주의 지배자들에게 맞서 싸우자’는 외침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무의미한 반항처럼 느껴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문제에 무지를 택하고, 무지를 택한 이들에게 계속해 사회 불평등에 대해 외치는 일은 자발적으로 피곤하게 사는 일로 여겨질 뿐이다. 그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덮어두고 다른 것에 관심을 쏟고 싶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지젝이 말하는 소급적 자기정립은 주체가 자신의 행위와 실패 이후에 비로소 그 행위의 의미와 자기 자신을 소급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이다. 퍼피디아는 혁명과 가족, 동료와의 관계에서의 실패 이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소급적 자기정립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반면 록조는 끝까지 자신의 환상을 유지한 채, 환상이 이뤄지는 순간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소급적 자기정립의 과정 자체에 진입하지 않는다.
(…)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지를 택하는 세상에서, 윌라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개인적 차원에서도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을 거부하는 용기 있는 인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