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플라토노프(Platonov), 구덩이(1929-1930), 정보라 옮김, 민음사, 2007.
시대적 배경
혁명 전 철자법에서는 자음으로 끝나는 단어에 모두 경음이나 연음을 나타내는 부호를 붙였지만, 혁명 후 철자법이 개정되면서 철자법을 간소화했고 경음부호도 폐지했다. (144)
1917.10.
10월 혁명(October Revolution).
사회주의 혁명. 볼셰비키가 주도하여 임시정부를 전복하고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탄생으로 이어짐.
1917-1924
레닌(1870-1924). 볼셰비키 지도자.
신경제정책(NEP, New Economic Policy).
https://en.wikipedia.org/wiki/New_Economic_Policy
1924-1953
스탈린(1878-1953).
1차 5개년 계획(1928-1932). 목표는 집단화, 산업화.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five-year_plan_(Soviet_Union)
* 나라를 누가 지배하는가. 농민인가 아니면 노동자인가.
* 프롤레타리아. 마르크스(1818-1883). 자기 자신의 생산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아서 살기 위해 부득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현대 임금 노동자.
https://en.wikipedia.org/wiki/Proletariat
1953-1964
니키타 흐루쇼프(1894-1971).
탈스탈린화, 평화공존.
+
크라신 호. 1916년에 건조된 구조선, 전투함. 또 탐험선 겸 북빙양의 쇄빙선.
https://en.wikipedia.org/wiki/Krassin_(1916_icebreaker)
크렘린. 모스크바의 궁. 원래 황제의 거주지였으나 1918년 이후 소비에트 정부의 거점이 됨.
https://en.wikipedia.org/wiki/Kremlin
사모바르. 러시아 주전자.
https://en.wikipedia.org/wiki/Samovar
읽어볼 것
프레드릭 제임슨, 시간의 씨앗.
10
그러나 잠이 들려면 마음의 평화와 삶에 대한 순진한 믿음이 필요하고 이미 견뎌낸 고통을 용서해야 하는 법인데, 보셰프는 의식의 건조한 긴장 속에 누워서 자신이 과연 세상에 소용이 있는지, 아니면 그가 없이도 모든 것이 계속 잘 돌아갈지 알지 못했다. ... "개도 지쳤구나. 단지 태어났기 때문에 살고 있는 거야. 나처럼."
11
보셰프 동무. 행복은 물질주의에서 생기는 것이지 의미에서 생기는 게 아니오. ... 모두들 한꺼번에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면, 행동은 누가 하겠소?
생각이 없으면 사람들은 의미 없이 행동합니다.
20
사람은 건물을 짓고 자신은 무너진다. 그럼 그 안에는 누가 살지?
22
아무도 꿈을 꾸지 않았고 아무도 추억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각각의 사람들은 삶의 어떠한 잉여적 요소도 갖지 않은채 존재했고, 잠자는 동안에는 오직 심장만이 살아서 그를 지탱해 주었다.
24
진실이 없으면 내 몸은 약해져요. 난 노동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소. 전에는 공장에서 생각을 했지만, 그 때문에 해고되었소.
34
기침을 하고, 한숨 쉬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조용하군. 그렇게 파는 건 무덤이지 집이 아냐.
34-35
그는 여전히 큰 건물들을 짓고 난 후에 진짜 삶이 올 것이라 믿었고, ...
41
그는 사람들이 나쁜 날씨를 피해 살아갈 뿐인 공허한 건물을 세우게 될까봐 두려웠다.
44
그리고, 죽기로 마음 먹고, 그는 침대에 누워 삶에 대한 무관심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50
살아갈 곳이 없으면, 머리로 생각을 하는 거요.
53
어떤 사람들은 그의 마음에 들었고, 그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59
당신은 누구요? 왜 그렇게 키가 작지?
... 자본이 나를 반으로 잘라 놨거든.
61
그들은 일할 때 계속 몸을 사려, 마치 자기들 안에 뭐라도 간직한 것처럼!
62
진실 없이 살기란 내겐 어차피 부끄러운 일이니까.
82
그래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 나는 생산적인 노동을 위해 진실을 원하오.
121
대중 속으로 들어가 규제된 전체주의 인생 속에서 나 자신을 잊는 편이 낫지 않을까?
138
마치 말들은 모두 삶의 집단적 의미를 완벽하게 확신하고 있고, 그만이 혼자서 말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 같았다.
197
왜냐하면 어떤 건물도, 어떤 만족감도, 어떤 소중한 친구도, 어떤 별의 정복도 그의 정신의 빈곤을 이겨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 해설
그러나 플라토노프가 관심을 쏟은 것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의 물결이나 스탈린의 정책이 아니라 그 안에서 휩쓸리며 살아가는 개개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란 본래 '어디에도 없는 곳',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곳이므로, "구덩이"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비극을 향해 나아간다. 소설이 비극으로 치닫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본래의 이상을 잊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궁극적인 질문은 결국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의 원래 목적은 어디였는가, 본래의 이상을 기억하는가'이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 하더라도, 본래 의도한 방향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눈앞의 현실에 눈먼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숙고해야 할 질문들이다.
* 숙고합시다!
Тоска 토스카
책 "Hegel in a Wired Brain"(Slavoj Zizek), 3장 The Impasse of Soviet Tech-Gnosis 에 설명되어 있음.
토스카는 러시아어 단어로, 플라토노프가 노동 과정에서 생기는 공백(blank space)이나 정지(pause)의 경험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이는 문자 그대로 노동에 의해 형성되는 공허함(emptiness)이나 공백(void)를 의미한다.
토스카의 주요 특징 및 의미
* 토스카는 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허함이며, 이러한 공허함은 사고(thought)를 가능하게 한다. 반면, 노동에 대한 절대적인 충만함(absolute fullness)이나 몰두(preoccupation)는 사유를 위한 공간이나 틈을 남기지 않는다.
* 토스카는 영어의 '멜랑콜리(melancholy)'나 '그리움(longing)'과 유사하지만, 특정한 원인, 대상, 또는 방향이 없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 토스카는 단순히 인간의 기분이나 성향이 아니다. "왜 들판은 그렇게 지루할까? 토스카가 온 세상에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버려진 들판의 관성(inertia)에까지 존재하며 전체 현실에 스며드는 우주적인 차원(cosmic dimension)을 가진다. 이러한 이유로 토스카의 감정적 측면(절망이나 멜랑콜리 등)에 너무 집중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노동으로 가득 찬 삶의 연속성에서 단절되어 발생하는 '제로 수준의 순수한 사유(pure thought at its zero level)'로 이해해야 한다.
* 플라토노프는 끊임없는 노동으로 쉼 없이 존재하는 존재와, 공허함과 시간을 초월한(timeless) 토스카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사유로서의 정지를 대조한다.
토스카와 공산주의의 관계
* 플라토노프의 초기 비전에서 공산주의는 토스카를 낳는 조건, 즉 상실과 결핍의 시간으로서의 역사적 시간 자체를 종식시키기 때문에 토스카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공산주의는 노동하는 삶의 연속성에서 벗어나 사유의 공간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토스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 그러나 플라토노프의 성숙한 비전에서는 공산주의가 더 이상 특이점(Singularity)의 한 형태가 아니며, 토스카는 여전히 '힘든 노동 생활에 대한 절망(despair at the laborious life)'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작동한다고 언급된다.
* "구덩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우주적 개념의 일종의 부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새로운 공산주의 건물을 위해 땅에 파인 거대한 구덩이, 즉 생존 투쟁이나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노동 지출의 상징은 우리 삶의 지워지지 않는 조건으로서의 토스카에 대한 기념비로 볼 수 있다. 이는 토스카가 특정 조건, 특히 무의미한 노동 아래에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이고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측면임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토스카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선 존재론적 상태로, 노동이 만들어내는 공백과 공허함에서 발생하는 사유의 원시적 형태이며, 인간 삶과 우주적 현실의 지울 수 없는 조건으로 제시될 수 있는 복합적인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