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라 유우, 유랑의 달(2019), 정수윤 옮김, 은행나무, 2020.
문학 ↔ 영화
유랑의 달, 이상일 감독, 2022.
11
물론 밥과 아이스크림은 다르다. 밥은 힘차게 부풀어 오르지만, 아이스크림은 힘없이 녹아내린다. 나는 둘 다 좋다.
25
... 웃으며 술래잡기를 하면서, 이 세상을 넌지시 통치하는 규칙이 있다고 생각했다.
149
기억은 공유할 상대가 있을 때에 비로소 강화된다. 나는 앞으로 오로지 혼자 그 시절의 2개월을 품고 살아가겠지. 행복할수록 버거워지는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무거우니 이제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며 내던져버릴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할 텐데.
162
이즈미가 해준 이야기와는 꽤나 분위기가 다르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
하지만 아마도 진실 따위는 없으리라. 이지므에게는 이즈미의, 료에게는 료의 각기 다른 해석이 있을 뿐, 나도 똑같다. 내가 아는 후미와, 세상이 아는 후미는 전혀 다르다. 그 사이에서 발버둥 친다. 료도 그럴까.
처음으로 료와 나 사이에서 통하는 걸 느꼈다.
204
아아, 그래. 세상은 어쩔 수 없는 일들로 넘쳐 나고 있으니. 부당하다고 성을 내도 에너지만 소모될 뿐이다. 그러니 깊이 생각하지 않도록 마음을 누르고 사는 수밖에.
212
항상 근무 시간표 때문에 허둥지둥하면서 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마음 약한 점장을, 나는 한편으로 얕보고 있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치심이 일었다.
222
료는 나의 몸에 폭력을 휘둘렀지만, 나는 료의 마음에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42
사실만 놓고 보면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할걸.
사실 따위 어디에도 없어. 다들 자기 멋대로 해석할 뿐
307
... 모두가 자유롭게 살고, 모두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모두가 참고 살지. 모순이지만, 그런 거잖아. 자기는 자유롭게 살면서, 자기를 상처 주는 일은 괴롭힘이니까 그만 두라니, 그게 통한다면 너야말로 제멋대로지.
반박할 수 없었다. 료가 하고 있는 일이 괴롭힘인가, 자유의 범주에 드는 일인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판단하면 료는 삐뚤어져 있다. 하지만 비뚤어져 있는 게 뭐 어때서? 비난할 권리는 있지만 구속할 권리는 내게 없다.
......그렇구나.
정말로 료와 끝이라고 생각한 건 지금 이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이에는 폭력이나 언어마저 상실되어 있었다. 더는 아무것도 없다. 텅 비었다.
367 (옮긴이의 말)
... 하지만 긴 세월이 지나도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기에 이 소설이 더 애틋했다. 세상의 틀을 벗어난, 규정할 수 없는 관계들과 마음들.
* 얼핏 보기에 접점이 없어 보이는 상대와 친할 때 우린 이런 질문을 쉽게 받는다.
둘은 어떻게 친해?
접점이 있더라도 성별이 다르면, 혹은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친할 수 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상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부정적인 판단으로 왜 그런 사람과 친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둘이 친구인 걸 제삼자에게 납득시켜야 할 이유 따윈 없다!
라고 외치고 끝내면 될까.
소설이라면 세상을 등진 채 관계를 이어가는 두 사람을 당연히 응원해 주고 싶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세상을 등진다'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오해를 견뎌야 하는 게 필수적이라면 분명 지치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일까.
현재 내 인간관계를 돌아보면 지극히 '설명하기 쉬운' 관계들뿐이다.
같은 무엇무엇으로 한 큐에 설명된다.
그리고 그 사실이 다시 나를 틀 안에 가둔다.
내 기준에 일반적이지 않은 건 뭔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어떤 지점에서 나와 아주 다르다는 말이고
그 다름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점점 불편함과 피로함... 無호기심 쪽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변해 가는 걸 나이탓, 사회탓 하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 점점 비겁해지나 보다.
* 나에게 소중한, 지키고 싶은 관계가 있다면 꼭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