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1), 최세희 옮김, 다산북스, 2012.
문학 속 작품
✔️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을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커크 더글러스에 비교한 적도 있었다. (16)
✔️ 테드 휴즈의 시
✔️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카뮈와 니체,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 보들레르와 도스토옙스키
✔️ 벨탄샤용(Weltanschauung): 세계관을 뜻하는 독일 철학용어
✔️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뜻의 독일 낭만주의 문학운동
✔️ "1812년 서곡"과 "남과 여" 사운드 트랙
✔️ 엘비스, 비틀즈, 롤링 스톤스도 있었지만(이런 음악을 대놓고 반대하기란 당연히 쉽지 않다), 홀리스, 애니멀스, 무디블루스에다가 '한 송이 꽃이 정원에 선사한 선물'이라는 제목을 단 도노반의 2 디스크 박스세트까지 있었다. (40) * 단세트는 스피커가 내장된 저가형의 휴대용 레코드 플레이어이고 블랙박스는 앰프를 연결할 수 있는 고급형 플레이어이다.
✔️ 리처드 호가트와 스티븐 런시먼, 요한 하위징아와 한스 아이젱크, 윌리엄 엠프선, 그리고 존 로빈슨 주교의 "하나님께 맹세컨대"와 테렌스 래리의 만화 시리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45)
✔️ T. S. 엘리엇, 오든, 맥니스, 스티비 스미스, 톰 건, 테드 휴즈, 그리고 조지 오웰과 아서 쾨슬러의 "레프트 북클럽" 판본들과 소가죽으로 장정한 19세기 소설들 몇 권, 아서 래컴이 삽화를 그린 동화책 두어 권과 그녀의 마음의 양식인 "성안의 카산드라"가 꽂혀 있었다. (46)
✔️ 세번 강의 해소. 영국 세번 강.
✔️ 만나서 이야기하자. 채링 크로스 호텔의 바 어때? 전화줘. 앨릭스. (87)
✔️ 나는 지금도 드보르작의 작품을 많이 듣는다. 심포니는 그리 많이 듣지 않는다. 요샌 현악 사중주에 더 끌린다. 그러나 청년기를 매혹하고, 중년기에도 어느 정도 그 여파가 이어지던 차이고프스키의 천재에 대해서는 말년에 이르니, 당혹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무관심하게 된다. 베로니카가 옳았다는 뜻이 아니다. 청년을 매료시키는 천재에 무슨 잘못이 있을까. 그보다는, 천재에 매료되지 않는 청년 쪽이 문제다. 그렇다, "남과 여" 사운드트랙까지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생각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는, 간간이 테드 휴즈를 떠올릴 때마다 실제로 그의 동물 소재가 고갈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미소를 짓게 된다. (108)
✔️ 무슨 책 읽어? / 베로니카가 내 쪽으로 문고판 책의 표지를 보여주였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었다. (199)
13
패거리나 짝짓기는 오래전에 끝나 있었고, 다들 학교를 탈출해 진짜 인생으로 진입할 것을 꿈꾸었을 시점쯤이었다.
18
콜린이 가족제도를 비난하고, 내가 정치제도를 조롱하고, 앨릭스가 지각된 실재의 본질에 철학적으로 반대하고 나설 때,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는 쪽을 고수했다. 어쨌든 처음에는 그랬다. 그는 사물을 믿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우리도 그랬다. 다만 우리는 애초에 우리 앞으로 결정지어진 것들이 아닌, 우리의 것들을 믿고 싶었을 뿐이었다. 우리가 자칭한바 우리의 정화적인 회의주의는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학교는 런던 중심부에 있었고, 우리는 매일 각자의 집이 있는 자치구에서 학교까지, 하나의 통제시스템에서 다른 시스템으로 이동했다. 그 시절엔 모든 게 지금보다 명백했다. 돈은 모자랐고, 전자기기도 없었고, 패션의 전제정치는 미약했고, 여자친구는 전무했다. 인간 된, 또는 자식 된 도리, 즉 공부를 하고, 시험에 합격하여 구직에 필요한 자격을 갖춘 후, 이 모든 것을 합쳐 우리 부모의 인생, 즉 우리의 것과 몰래 비교해볼 때 소싯적에 더 단순하고, 그래서 더 우월한 인생을 살았던 양반들의 인생에 견주어 눈에 거슬리지 않을 만한 선에서 약간 더 충족된 정도로 삶의 방편을 이루고 용인 받는 것으로부터 한눈을 팔게 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도, 단 한 번도 공공연히 거론된 적이 없음은 당연하다. 영국 중산층 특유의 고상하신 사회진화론은 언제나 암묵적으로만 존재한다.
23
그렇다, 당연히 우리는 허세덩어리였다. 달리 청춘이겠는가.
25
병적인 불신은 사춘기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이며, 성장하면서 벗어던져야 할 것으로 믿는다는 듯이. 선생들이나 부모들은 자기들에게도 어린 시절이란 게 존재했음을 짜증이 날 정도로 들먹이면서, 그러니까 내 말을 들으란 식이었다. 그것도 다 한때야, 라고 그들은 우기곤 했다. 언젠가는 그런 데서 벗어나게 될 거야. 현실이 뭔지, 현실성이 뭔지, 인생으로부터 깨우치게 될 테니까. 그러나 그때 우리는 소싯적의 한 순간이라도 그들에게 우리 같은 때가 있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투항해버린 연장자들보다는 우리가 삶―그리고 진실과 도덕과 예술―을 더 확실하게 포착했다고 믿었다.
26
음, 한 가지 의미에서 보자면, 저는 제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건 철학적으로 자명합니다.
사실, 책임을 전가한다는 건 완전한 회피가 아닐까요? 우린 한 개인을 탓하고 싶어하죠, 그래야 모두 사면을 받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개인을 사면하기 위해 역사의 전개를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죄다 무정부적인 카오스 상태 탓이라 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 우리 앞에 제시된 역사의 한 단면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가 해석한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29
카뮈는 자살이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문제라고 했어.
31
인생에 문학 같은 결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그것 또한 두려워했다. 우리 부모들을 보라. 그들이 문학의 소재가 된 적이 있었나? 기껏해야 진짜의, 진실된, 중요한 것들의 사회적 배경막의 일부로서 등장하는 구경꾼이나 방관자 정도라면 모르겠다. 그 중요한 것들이 무어냐고? 문학이 아우르는 모든 것이다. 사랑, 섹스, 윤리, 우정, 행복, 고통, 배반, 불륜, 선과 악, 영웅과 악당, 죄악과 순수, 야심, 권력, 정의, 혁명, 전쟁,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사회에 맞서는 개인, 성공과 실패, 살인, 자살, 죽음, 신 같은 것들. ...
물론 다른 종류의 문학도 있다. 연극적이고, 자기반영적이고, 눈물을 자아내는 자전적인 문학. 하지만 그런 건 지루한 자위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문학은 주인공들의 행위와 사유를 통해 심리적이고,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진실을 드러내야 했다. 소설은 등장인물이 시간을 거쳐 형성되어가는 것이니까. 어쨌거나 필 딕슨 선생이 우리에게 해준 말에 따르면 그랬다. 그리고 이제까지 소설과 무관하면서도 그에 준하는 삶을 산 사람은―롭슨을 제외하면―에이드리언이 유일했다.
33
역사는 생 양파 샌드위치입니다.
죽자고 반복하니까요, 선생님. 우리는 이제껏 역사가 트림하는 것을 보고 또 보았고, 올해에도 또 보고 있습니다. 폭정과 폭동, 전쟁과 평화, 번영과 빈곤 사이를 오가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와 천편일률적인 동요 뿐이죠.
47
그래도 이젠 우린 대학생이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 안 그렇니?
65
너 참 소심한 것 알아, 토니?
그렇다기보단 그냥 불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네가 생각하는 네 이미지를 흐트러뜨릴 생각은 없어.
... 나는 마음속으로 이제 우리 관계의 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정말로 그랬던 것처럼 만들어버리기 위해 그런 식으로 기억하고, 그래서 비난을 면해보려는 걸까. 만약 재판정에 서서 그때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밝혀야 한다 해도, 나로선 '향하는' '고인 물' '불화를 좋아하지 않는' 같은 몇 마디 말 이상의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나 자신이 불화를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한 적도, 그 반대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나는 또 비스킷 깡통이 정말로 실재했다는 것도 맹세할 수 있다. ...
76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지금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80
그는 행위를 근거로 정신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헨리 8세를 비롯한 기타 등등의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에 개인의 삶에서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현재의 정신 상태를 근거로 과거의 행위를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완전무결한 부모와 오누이와 이웃과 동료로 이루어진 세상을 사는 것도 아닌데, 상처를 피할 도리가 있을까.
89
심리적 평형상태를 상실한 것이 계기가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3
걘 너무 똑똑했어. 사람이 그 정도로 똑똑하면 세상 모든 걸 다 따지고 들 만하거든. 상식 같은 건 뒷전에 버리고 말이야. 그 아이를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만든 건, 다름아닌 그애의 머리야, 그래서 그런 짓을 한 거야.
95
나는 마침내, 내가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에이드리언의 논거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었고, 그에게 경외심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도량이 넓고 준열한 기질의 소유자였다. 그는 논리적으로 사고했고, 논리적 사고로 도출한 결론에 따라 행동했다. 반면 우리 대부분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그런 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고 말한다.
101
나는 살아남았다. ...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105
... 그러나 이는 결국 앞을 내다보는 행위일 뿐이다. 앞을 내다보고, 그러고 나서 그 미래로부터 과거를 돌아보는 자신을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감정을 익히는 것. 예를 들면, 우리의 삶을 지켜봐온 사람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인간됨과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명해줄 것도 줄어들고, 결국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듦을 깨닫게 되는 것. 부단히 기록―말로, 소리로, 사진으로―을 남겨두었다 해도, 어쩌면 그 기록의 방식은 엉뚱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 무엇이었나?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107
... 우리가 역사를 어찌 파악한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 태반인 그 단편들을.
111
누구나 그렇게 간단히 짐작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예를 들면,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과 동등하다고.
113
이미 말했지만, 나에겐 일종의 자기보존 본능이 있다. 나는 내 마음에서, 나의 역사에서 베로니카를 깔끔하게 몰아냈다.
117
난 당신이 미스터리한 여자가 되길 바라진 않아. 그건 별로일 것 같아. 그래봤자 허세나 게임이고, 남자를 꼬드기는 기술일 뿐이야. 혹은 그 미스터리라는 게 여자 자신에게도 미스터리일 텐데, 그건 최악이지.
123
나는 다만 과거에서 벗어나길 바랐고, 그래서 묘한 거짓말을 한 나를 마거릿이 용서해주길 바랐다. 그녀는 그렇게 해주었다.
141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142
그러나 향수라는 것이 뜨거웠던 감정들을 강하게 회고하는 것, 이제는 우리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 감정들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을 의미한다면, 나 자신도 예외일 수 없음을 인정한다.
144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순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잘 살았다고 상을 주는 게 인생이란 것의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생이 저물어갈 때 우리에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의무도 없는 것 아닌가. 생의 진화론적 목적 중에 향수라는 감정이 종사할 만한 부분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145
그는 나에게 말하길 변호사가 되겠다고 허비한 세월에서 하나 얻은 게 있다면, 더는 법도 변호사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했었다. ... 배우면 배울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학문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맥락에서 '배우는' 것이다.
161
사춘기가 끝나갈 무렵, 모험이라는 것에 대책없이 취했던 게 기억난다. 성인이 된 나 자신에 대해 이런저런 걸 상상했다. 어디를 갈 것이고, 이런 걸 하고, 저런 걸 발견하고, 그녀를 사랑하고, 또 다른 그녀, 또 다른 그녀, 또 다른 그녀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소설 속 인물들처럼 살 것이라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고. 어떤 소설처럼 살았는지는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오직 열정과 위험, 황홀경과 절망(이 있으나 그후에 더 크게 찾아오는 황홀경)뿐일 거라고. 그러나...... '예술이 과장하는 삶의 보잘것없음'에 대해 이야기한 게 누구였나. 이십대 막바지의 어느 순간, 나는 나의 모험심이 줄어들어버린 지 오래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소년기에 꿈꾼 것 중 단 하나라도 실행에 옮길 날은 오지 않을 거였다. 대신, 나는 잔디를 깎았고, 휴가를 냈고, 나름대로 인생을 즐겼다.
165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179
인성의 깊이와 세월의 흐름은 비례하는 걸까? 소설에선 물론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인생에선 어떨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의 태도와 견해가 바뀌고, 새로운 습성과 기벽이 생기긴 하지만, 그건 뭔가 다른 것, 이를테면 장식에 가까운 것이다. 어쩌면 인성이란 다소 시간이 지나서, 즉 이십대에서 삼십대 사이에 정점에 이른다는 점만 빼면, 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그때까지 쌓은 소양에 여지없이 고착되고 만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뿐이다. 그렇다면 그걸 통해 여러 인생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폼 잡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우리의 비극까지도.
181
... 자신의 인생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는 개념부터 챙겨라. 에이드리언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명석했다. 내가 상식을 적용하는 지점에서 그는 논리를 적용했다. 그러나 결국엔 우리 둘 다 엇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생각이다.
183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달리 설명해볼까. 혹자는 역사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기가 모든 것이 붕괴할 때로, 이는 곧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우리 개인의 삶에 적용할 때 과연 타당한 데가 있을까?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동안 죽는다는 것. 설사 그 새로운 것이 다름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 해도. 모든 정치적, 역사적 변화가 얼마 안 가 반드시 실망을 안겨주는 것처럼, 성년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184
그래서 나는 베로니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제목에 '질문'이라고 쓴 다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 시절에 내가 널 사랑했다고 생각해?' 내 이니셜로 서명을 한 후, 마음이 바뀌기 전에 보내기 버튼을 눌러버렸다.
186
내 얘기의 요지는, 장담컨대, 회한의 주된 특징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데 있다.
236
회한(remorse)이란 말은 어원적으로 한 번 더 깨무는 행위를 뜻한다. 회한의 감정은 그와 같다.
255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옮긴이의 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반스는 기억의 문제 외에도 인간의 조건과 자유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 삶은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다. 우연의 연속 안에서 인간이 실제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건 없다. 자주,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 한 인간과 그 주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에이드리언은 인생을 '바란 적 없는 선물'이라 단언하며 '인생을 직시하고, 또 책임감을 가진 사유하는 개인이라면' '거부할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 이유도 목적의식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후, 죽음만을 유일한 필연으로 맞이하게 되는 것이 인간 존재의 조건이다. 자유란 어쩌면 이런 인간 운명의 비극적인 필연을 성찰할 줄 아는 능력을 일컫는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즉, 생성엔 이유가 없고 소멸만이 확실한 인간의 비참을 인식하는 것이 우리가 가졌다는 알량한 자유의 전부이며, 에이드리언처럼 극단적으로 저항하거나, 다만 침묵하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인생이라는 거대한 속임수에 당하지 않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니는 저항하지도, 침묵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진언을 한 것도, 모의를 꾸민 것도 아니었다. 다만 농담처럼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 처음 읽을 때는 소설이 말하는 '사건'에 너무 집중한 탓에 재밌게 읽지 못한 것 같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가! 가 중요한 게 아닌데 자꾸 거기에 집착하게 돼서...
붙여 놓은 포스트잇을 떼면서 몇 발자국 떨어져 다시 읽으니 더 재밌다.
그리고 문장들이 아주 철학적이다.
* 개인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 에 대해 연구해도 재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