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2005), 문학동네, 2010.
문학 속 문학
사기사와 메구무, 달리는 소년, 1990.
두렵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을 억누르면서 어딘가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다다를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언제 가라앉을지도 모르는 물 위의 길. 아버지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을 것이다. 치밀어오르는 쓸쓸함일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에 쫓기고 있는 것일까. - 사기사와 메구무, <달리는 소년>에서 (96)
문학 속 책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 당황한 표정으로 형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나는 견인주의자로 살아갈 거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말이야. 그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고 일찌감치 자신의 인생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후의 명성에 집작하지 말 것이며 그날 그날을 최후처럼 살지어다. 명상록에 씌어 있는 말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시대와 함께 살지 않는다면 그건 유령의 삶과 다를 바 없어. 아우렐리우스는 황제 이전에 군인이었어. 대표적인 현실참여주의자였단 말이지. 그렇군, 하고 형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각자 인생을 살아내는 방법이 다른 거 아니겠어? 남한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비난을 받거나 또 평가받을 이유가 없는 거야. ... 형은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영빈은 형과 속내를 터놓고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206)
105
"앞으로 좋은 작품 쓰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꼭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아마 그럴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말이 영빈의 마음속에서 성냥불처럼 타올랐다. 그 불은 곧 꺼져버렸지만 영빈은 그때 그녀가 한 말을 두고두고, 이따금씩 떠올리곤 했다. 그토록 평범한 말이 그토록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는 것이다.
"사기사와씨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글 쓰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행복하시길 바라고요."
그녀는 그 말에 무척 놀란 듯했다.
"그래요, 물론 그래야겠죠."
* 여길 읽는데 한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평범한 말인데 오래 마음에 남아 있는 말.
* 하고자 하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행복하면 좋을 텐데. 참 어렵다!
201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나서 영빈은 자신에게 남겨진 삶의 유일한 증거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이 찾아왔을 때 아버지는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뒤였다.
228
언젠가 그럴 때가 올 거예요.
그러다 아예 때를 놓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241
커피를 마시는 동안 해연은 자신이 숨 가쁘게 사춘기를 지나 성인기로 접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젊음도 늙음도 나이는 그렇게 한순간에 먹는 법이다.
352
... 적어도 다시 만났을 때는 의미가 생길 수밖에 없단 말이지. 사람 사이에 동질감이나 유대감은 중요한 거야. 그걸 느끼는 순간부터 서로 타인이 아니거든.
그렇다고 뭐가 달리지죠?
이미 달라져 있잖아. ...
374
여기서 또 주저앉거나 뒤를 돌아보게 되면 다시는 일어설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 안과 밖, 공간과 장소, 꿈과 현실의 경계가 없는 지점을 찾아 영빈은 쉼없이 내면으로 줄을 타고 내려갔다.
1947-1954
1988
1994.10.21
2003.02
2004.02.06
2004.03.05(금)
제주 4·3 사건.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영빈이 호랑이를 처음 본 날.
성수대교 붕괴 사고.
영빈이 살고 있는 앞동으로 해연이 이사와 8년 4개월 만에 해후한 날.
제주도에서 아시아 최초로 사람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고 공식 발표한 날.
영빈, 바다에 사는 물고리를 처음 잡은 날.
* 나는 분명 "남쪽 계단을 보라"를 들고 다녔는데 어느 틈에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로 바뀐거지? 혼란하다 혼란해. 책이 혼란해서 나까지 혼란스럽나.
* 책 후반부, 나는 첫 번째 소식이 임신 소식일 줄 알았는데, 히데코의 자살 소식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소식이 임신 소식.
영빈이랑 해연이는... 아기 낳고 키우며 잘 살았으려나.
* 책을 읽는 동안에 지금이 내가 이 책을 가장 가슴 뛰며 읽을 수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다. 요즘은 자꾸 뭐든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