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1939), 이유정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 2024.08.
문학 속 책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9.
문학 속 오페라
글루크 작곡,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문학 ↔ 영화
1946년, 1979년에 제작된 영화 "초조한 마음".
* '연민'이라는 내면에 대한 훌륭한 묘사.
* 고전 소설을 읽다 보면 점점 더 그 시대에 전쟁과 종교 등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느끼게 된다.
배경 지식이 있다면 소설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공부... 해야지...)
* 이 소설의 배경: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접경지역
* 관계는 결국 '끝'이 그 관계에 대한 모든 걸 결정지어 버리는 것 같다.
현실에서,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연민'을 하면, 우리는 그걸 '진정한 연민'이 아닌 '사랑'이라고 말하고,
'사랑'이었다고 해도 '초조한 마음'으로 끝나버린 '사랑'은, '사랑'이 아닌 '연민'이었다고 말한다.
* 에디트 그리고 에디트와의 관계에 대한 호프밀러의 내면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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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처럼 이상한 가책이 나를 엄습한 그 순간에도 나는 이미 그것이 어리석고 쓸데없는 고행임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고 해서 나 역시 그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불행하다고 해서 나 역시 불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웃으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매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병원, 채석장, 탄광 등지에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공장, 관청, 교도소에서는 매시간 수많은 사람들이 사역에 동원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쓸데없이 나 자신을 괴롭힌다고 해서 결코 이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구상의 모든 비참함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괴로움에 잠도 못 이루고 입가의 웃음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를 당혹하게 하고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결코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상상 속의 고통이 아니다. 실제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함께 나눈 고통만이 진정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법이다.
70
사람은 자신이 남에게도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와 사명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74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자유로운 사람과 감금되어 있는 사람의 관계가 아무런 문제없이 지속되기란 힘든 법이다. 불행한 사람은 쉽게 상처받고, 끊임없이 고통받는 사람은 모든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쪽은 주기만 하고 한쪽은 받기만 하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불편할 수밖에 없듯이, 늘 보호를 받기만 하는 환자는 조금이라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마음에 대해서도 언제나 속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231
나는 나의 나약함과 부질없는 연민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방치했던 것이다. ... 이제는 내가 감정이 앞선 나머지 남들까지 들뜨게 만든 것에 대가를 치러야 할 때였다.
246
나는 이 세상에 나쁜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사악함이나 잔인함이 아닌 나약함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259
당신은 오로지 연민 때문에 오는 거라고요. 그러면서 당신의 고귀한 희생에 대해 칭찬받고 싶어 하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원치 않는답니다.
* 호프밀러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심성은 착하나 용기 없는 찌질이...
에디트에 대한 호프밀러의 감정은 아마도 연민 조금,
애정 그보다 많이, (그 스스로는 몰랐던 것 같지만,)
그리고 희생함으로써 얻는 뿌듯함과 함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만족감.
그리고 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그러나 관계에 있어 필요한 건 의지와 상관없이 느껴지는, 위와 같은 '감정'만은 아니다.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호프밀러에게는 부족했던―인내심, 뉘우침, 책임감 따위도 함께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마음'이라고 할 때, 과연 마음에 딱 알맞은 종류와 정도가 있을까?
마음이라는 건 대개 불분명하고, 늘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가.
그러니 그러한 마음으로부터 자라난 관계에서 누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것이냐 하는 문제 역시
너무나 어려운... 어쩌면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이 세상에 콘도어 같은 인물이 실존할까?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었을까?
그저 거대하고 진실한 책임감 뿐?
235
연민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손을 떼고, 특히 마음을 떼야 합니다. ... 그 거절 때문에 환자가 처음부터 도와주지 않은 사람보다도 자신을 더 증오하게 될지라도 그렇게 말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그래요, 소위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연민은 무관심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 의사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판사나 법 집행관, 전당포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연민에 굴복한다면 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연민이라는 거, 아주 위험한 겁니다! 이번 경우에도 당신의 나약함 때문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보십시오!
그렇지만... 그렇지만 어떻게 절망에 빠진 사람을 그냥 모른 척 합니까? 저는 그저...
갑자기 콘도어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게 아니에요! 책임감을 느껴야죠! 엄청난 책임감이요! 연민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면, 그건 엄청난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고요! 성인이라면 어떤 일에 관여하기 전에 자신이 어디까지 함께 갈 건지부터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남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죠! ...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연민을 말합니다.
347
내가 왜 아내와 결혼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그림에서 벗어나는 일에 대해 처음에는 호기심을 느끼지만 곧 악의적으로 변한답니다.
역시 나약한 인간들. 콘도어라는 인물에게 의문을 품은 나 역시...
+
"초조한 마음"을 읽고 나자 이 글이 생각났다.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해 쓴 글인데,
나는 한창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던 때에 자주 읽었다.
모든 이별의 이유는 사실 핑계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긴, 사랑 자체가 홀로 버텨내야 할 생의 고독을 이기지 못해 도망치는 데서 비롯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랑에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도망쳐야 했던 것은 어느 시절 웅대한 포부로 품었던 이상일 수도 있고,
세월이 부과하는 책임일 수도 있으며,
격렬하게 타올랐던 감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번번이 도주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냅니다.
그리고 항해는 오래오래 계속됩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이 아름다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깨끗하게 묶은 조제의 뒷모습처럼,
결국엔 우리가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진 않기를.
( 전문은 여기서 → https://blog.naver.com/lifeisntcool/1301840588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