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진이, 지니, 2019.
📖 2024.03.
문학 속 기타...
왐바 캠프: 콩고민주공화국 에콰테르주 밀림에 자리 잡은 왐바 캠프는 1974년 일본 영장류학자 가노 다카요시가 보노보를 연구하기 위해 설립했다. 세계 각국의 동물학자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보노보에 대한 현장 연구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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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에 대해서는 말끔하게 잊어버리고, 내 문제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 (Daniel Dennett, 1942-2024) 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영혼에게 바랄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영혼이 바라는 대로 행동할 자유다."
나는 늘 그래왔듯 내 영혼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건너서 버스 승강장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넋 나간 사람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서 길 건너 병원 앞마당을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내 문제는 사소하게 느껴졌다. 작아서 사소한 게 아니라 멀어져서 사소해진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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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새로운 '이른 아침'이 올까. 나 자신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의 떨림을 느낄 수 있을까. 그는 햇빛 속에서 내가 돌아오는 걸 볼 수 있을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눈꺼풀이 뜨뜻하게 젖어왔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허둥지둥 메모장으로 눈을 내렸다. 지니가 서 있던 콩고 강변으로 돌아갔다.
작가의 말
시간의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버트런드 러셀)
이 한 줄의 문장은, 아주 오래전 어느 날로 나를 데려갔다. 3년 동안 투병하던 어머니가 내가 근무하던 중환자실로 내려온 날이었다. ...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순간'이 어머니에게 닥쳐오기까지 만 사흘이 걸렸다. 내게는 백일몽처럼 스쳐간 사흘이었다. 어머니 곁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미동도 없는 어머니를 향해, 가끔 속삭이듯 물었던 것만 기억났다. 엄마, 지금 어디에 가 있어? 29년이 지난 그날 새벽에도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세 번의 낮과 밤이 지나는 동안, 어머니의 영혼은 어디에 가 있었을까. 무엇을 했을까. 당신 앞에 새파란 미래가 바다처럼 놓여 있던 열두 살 시절로 갔을까?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당신의 비밀스러운 꿈속을 날아다녔을까? 나는 '꿈속'으로 줄달음하는 내 상상을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책을 덮었다. 내친김에 새 노트를 꺼내 이렇게 썼다. 생의 가장 치열했던 사흘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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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면 대답해."
다정한 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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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와 지니의 육체와 정신 공유에 대해 꼬치꼬치 따져 물으면 안되는 책인 것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책의 마지막, 민주에게 쓴 진이의 편지 대목에서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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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는 결말이 아쉬웠는데,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도 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은 지니가 되는 걸 받아들여야만 하는 거다.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애초에 해결책이 없는 문제라니. 그저 육체도 정신도 죽음을 맞게 되는 게 진이의 결말이라니.)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의 출발점을 알고 나자, 결말이 납득이 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건 결말이 먼저 정해져 있던 소설인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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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이 고등학교 시절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들이다.
내가 느끼기에 그는 "진이, 지니"처럼 따듯한 분위기보다는 악의 3부작처럼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을 더 잘 쓰는 것 같다. 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만의 매력이 훨씬 더 뚜렷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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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보노보를 검색해 봤다.
조금 작은 버전의 침팬지를 상상했는데, 정말 인간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무척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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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지금쯤 왐바 캠프에서 보노보 현장 연구에 한창 매진 중이실 류흥진 박사님께 감사드린다.'고 쓰여 있어서 찾아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