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새로운 인생(1994),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06.
그리고
이난아, 오르한 파묵의 작품 세계와 『새로운 인생』 읽기, 한국중동학회논총, 제20-1호, 1999.
이난아, 오르한 파묵: 변방에서 중심으로, 민음사, 2013.
소설 "새로운 인생"의 주인공 오스만은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만난다. 학교 매점에서 (건축학과) 여학생, 자난이 들고 있던 그리고 잠시 내려뒀던 그 책을,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헌책을 파는 가판대에서 발견하고는 산 것이다. 그 책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고 그는 책 속의 세상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나는 그 방으로부터, 집으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어머니의 냄새로부터, 내 침대로부터, 22년 동안 살아온 내 인생으로부터 달아나야만 했다. 새로운 인생은 그 방을 떠나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침마다 그 방을 나와서 밤마다 그 방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한, 자난이나 그 나라, 둘 중 어느 쪽에도 가까워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61)
오스만은 사라진 자난을 찾으려 애쓰다가 이곳을 떠나 책이 나를 인도하는 곳, 자난과 새로운 인생이 있는 곳으로 가겠다 결심하고는 알 수 없는 시간에 아무 버스나 골라잡고 올라타서는 여행을 시작한다.
혼자 여행하던 오스만은 버스 사고 현장에서 자난을 만나고 둘은 함께 여행을 한다. 여행은 계속된다. 여행 내내 메흐메트를 찾고자 하는 자난을 통해서 그리고 메흐메트의 아버지인 나린 박사를 통해서 메흐메트는 계속해 등장한다. 메흐메트는 오스만이 책을 읽은 직후 자난을 만났을 때 그녀가 오스만에게 소개해 준 ‘책 속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인물로 책을 읽기 전의 이름은 나히트였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나린 박사는 나히트의 아버지이다.)
책 속의 세계를 찾아내겠다는 오스만에게 단호하게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사라졌던 메흐메트는 13장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더 이상 그의 이름은 메흐메트가 아니다. 그는 오스만이다.
나히트가 되기를 거부했던 것처럼 메흐메트가 되는 것도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275-276)
그는 책을 조금도 틀리지 않고 필사하는 일을 반복하며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진짜) 오스만은 그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의 인생이 이미 자리를 잡았고 책 속의 표현처럼 '정상 궤도에 들어섰음'을 나는 보았다. 그도 나처럼 책 때문에 길을 나섰지만, 그 여정 속에서 그는 내가 발견하지 못한 죽음과 사랑과 재앙으로 충만한 여행과 모험을 발견해 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 영원히 변치 않을 어떤 균형을 찾아냈다. 내면의 평화를 찾아냈던 것이다. (…) 그가 찾았던 균형의 평온은 그에게 결코 끝나지 않을 영원한 시간을 주었다.(283-284)
한때는 책 속의 세계를 찾아 떠났지만 이제는 균형의 평온 상태에 도달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어떤 머나먼 곳으로, 그렇게 오래 여행을 했는데도 그가 본 새로운 나라는 없었던가? 어떤 곳이 있다면 그곳은 글 속에 있다. 그러나 글에서 찾았던 것을 글 바깥에서, 인생에서 찾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 또한 글만큼이나 한계가 없고 결점투성이에, 불충분했기 때문이다.(287)
끝내 오스만은 어두운 영화관에서 오스만이 된 메흐메트를 향해 총을 쏜다. 그리고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로 시작했던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죽는 것을,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결코, 결코 원하지 않았다'.
옮긴이 이난아는 이 소설을 '책을 그에게 소개한 여자 자난에 대한 사랑, 그 책과 천사의 비밀을 풀기 위해 떠나는 여행, 그 여행에서 본 마을들, 교통사고들, 자난의 애인을 죽이는 오스만 그리고 평범한 도시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순간 교통사고로 죽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설명하며 영화관 장면에 대해 '작가는 죽은 자가 누구인지와 죽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나히트, 메흐메트, 오스만, 세 가지 인생 모두를 죽인 것인지, 아니면 영화와 메흐메트, 그리고 저격자인 오스만 자신의 과거에 총격을 가한 것인지'라고 말한다.
오스만과 메흐메트는 모두 진정한 자아, 삶의 의미 따위를 찾으려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다른 가치관을 가져 대립하는 두 인물이 아니다. 다른 시점에 위치해 있는 같은 인물이다. 오스만의 미래가 오스만으로 이름을 바꾼 메흐메트인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동일한) 결론과 결말이 보여주듯 새로운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메흐메트의 균형 상태 역시 진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