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2013.
📖 2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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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금방 동나 버릴 것 같은 화면 앞에 앉아 곰곰 생각했다.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국 한순간이다. ... 불이 나면, 땅이 흔들리면, 경보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그대로 튀어 나가야 한다. 외투를 찾아 든다거나, 가방을 챙긴다거나, 노트북의 데이터를 저장한다거나, 휴대폰을 누른다거나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결국 생사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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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여행이 좋아서 지원한 회사였지만, 10년을 버티는 동안 정글은 요나에게 점점 다른 의미가 되어 갔다. 정글에서 파는 것이 여행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고 해도, 요나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 여행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고 해도, 해야 한다면 할 수 있었다. 서른셋. 가정 따로 회사 따로 꾸려갈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정글은 최적화된 직장이었다. 사내 커플을 권장했고,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내 소개팅을 주선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택도 제공했다. 병원도, 극장도, 스포츠센터와 쇼핑몰도 모두 회사 내에 있었다. 이런 회사의 단점이란 딱 하나뿐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인생 전체를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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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난이 눈길을 끌 수는 없잖아요. 이슈가 되는 재난들은 따로 있어요. 보통 이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켜야 하죠. 일단,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은 될 것. 지진이라면 적어도 6.0 이상. 화산이라면 폭발 지수가 3등급 이상. 웬만해서는 이제 큰 뉴스도 못 돼요.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바쁜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동정하고 주목해 준다 그겁니다. 세상이 너무 자극적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관심이란 건 정직한 거니까요. 둘째로는 새로운 지역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꾸 반복되는 지명은 재미없어요. 뻔한 곳이니까요. 아주 강도가 크지 않은 이상, 새로운 지역, 덜 알려진 지명이 언급되면 사람들은 주목하게 되죠. ... 연민에도 권태가 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색다른 세계가 그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면, 지금까지 자극받지 않았던 새로운 세포가 마구 자극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신선한 아픔을 느끼겠죠. 마지막은,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바로 스토립니다. 재난이 벌어진 후에 사람들이 신문을 뒤적이는 건, 재난의 끔찍함을 보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 만신창이 속에서 피어난 감동 스토리를 찾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죠. 그건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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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건 구명보트 같은 거라고, 그는 말했다. 모두 공평하기 위해서 침몰하는 배 위에 머무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흔한 음모론의 줄거리처럼, 그들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포기하기로 했다.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살 속의 탄환을 빼내듯, 남아 있는 것들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 그렇지만 누가 소수가 되려고 하겠는가.
사람들은 과거형이 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반듯해지고 용감해진다. 그러나 현재형 재난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것이 재난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색해도 방관하거나, 인식하면서도 조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싱크홀은 저편 사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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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생각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이제 요나는 다시 두툼한 전깃줄이 늘어진 거리 위를 달려 여행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간다. 저 머리카락 뭉치 같은 전깃줄을 타고, 무아의 모든 골목을 지나 바다를 건너면 어쩌면 요나가 지나왔던 모든 경로를 거꾸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걸 어긋나게 만든 최초의 지점, 그 지점을 찾아 요나는 머릿속을 더듬는다. 그러나 결국 지금은 수많은 순간들의 연속이다. 끊어진 지점 따위는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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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은 사람들을 등졌다. 거짓말만이 럭을 구원할 수 있었다.
* 소설의 주인공 요나는 재난을 상품화하는 일을 한다. 다시 말해, 소설 속 사회는 재난이 돈이 되는 사회이다. 그리고 이제는 일어난 재난을 상품화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인위적으로 상품가치가 있는 재난을 만들어내려 한다. 인위적으로 상품가치가 있는 재난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결국 학살을 자행한다는 뜻이다. 학살을 자행하는 주체는 거대한 자본가, 폴이다. 그리고 그러한 거역할 수 없는 자본의 힘에 의해 약자는 희생된다. 심지어 사회는, 희생의 대가로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는 식의 사고를 부끄럼 없이 내보인다.
이 소설을 읽으며 폴이 옳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적어도 '악어 70부터 악어 450까지는 모두 개죽음을 당하게 생겼다'라는 것이 잘못됐다고 느낀다면, 그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도 그와 비슷한 옳지 못한 면, 잘못된 면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고가 이미 자본주의 논리에 잠식되어, 그것이 그렇게까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요즘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현재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따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자본주의 논리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그것을 숭배하는 데에 이른 듯 하다. 물론 나도, 자본주의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게 자본주의와 관련 있다면, 그건 분명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것도 있어야만 한다...
* 폴은 결국 소설의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폴이 어디에도 없는 존재라는 걸, 당신도 알지 않나요?"(198). 이런 말 따윈 집어치우고 네 정체를 정확히 밝혀라, 폴!
*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또는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고 그걸 어떤 이야기로 전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