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2020.
책을 소리내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에겐 눈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다. 종이에 적힌 문장은 부끄러움이 많아 종이에 달라 붙어 있는건데 그걸 억지로 뜯어내 말로 하는 건 옷을 벗기는 것처럼 수치를 주는 짓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읽기가 무슨 인간이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도 되는 양 학생들에게 읽기를 시킨다.
엄마는 끔찍한 일을 하면서 동시에 그 일을 못하게 될까봐 매일 걱정하며 산다.
나는 속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읽어 봤다. 마음의 세계에서는 막힘이 없다.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 수치는 여전히 수치일 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할 일 없이 일기 같은 걸 쓰면 나중에 글쟁이가 된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불만이 많고 허황된 생각만 하고 살아. 현실 감각도 없고 생활력도 없어서 굶어 죽기 딱 좋은 인생이 되는 거야.
불행해지는 진실과 행복해지는 거짓말 중 무엇이 더 좋은걸까?
그냥 살아. 돌멩이가 왜 딱딱한지 아니? 왜 나무는 말을 못하게? 몰라. 나무도 돌도 몰라. 사람도 그래. 사는데 이유는 없어.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사는 건 피곤해지고 슬퍼진단다.
나를 이해한다고? 아니, 누구도 나처럼 살지 않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차피 나만 보는 노트인데도 솔직한 마음을 쓰는 것이 어렵다.
언어를 통해 소통하는 일의 지난함에 대해 –
경험상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면 좋지 않다. (…) 경우에 따라선 사랑하게 되고 반대로 미워하게 된다.
마음에 있으면 괜찮고 마음에 있는 걸 쓰면 나쁜 겁니까?
미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 있고, 싫지만 좋을 수도 있으니까. 복수하고 싶으면서 용서하고 싶은 것도 가능하지.
* 스무 살에 "바벨(2014)"을 정말 재밌게 읽었었다.
이 책도 좋다.
그리고 나도 말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