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데카르트, 1596-1650.
칸트, 1724-1804.
헤겔, 1770-1831.
마르크스, 1818-1883.
니체, 1844-1900.
프로이트, 1856-1939.
발터 벤야민, 1892-1940. (마르크스주의)
라캉, 1902-1981.
푸코, 1926-1984.
자크 데리다, 1930-2004.
만프레도 타푸리, 1935-1994. (마르크스주의)
지젝, 1949-.
르네 데카르트. 프랑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계몽사상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의 근본 원리를 처음으로 확립.
방법서설. 이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여러 가지 학문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의 서설.
(Discours de la méthode pour bien conduire sa raison, et chercher la verité dans les sciences).
데카르트는 가장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진리가 아닌 것들을 소거하는 것이다.
그는 확실한 진리를 찾으려 반드시 맞는 것이라 확신할 수 없는 감각도 배제했다.
그리하여 도달한 결론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전능한 악마가 인간을 속이려 한다고 해도, 악마가 속이려면 생각하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근대 철학을 대표하는 명제이며,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은 이 명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특히 데카르트가 사용한 관념이라는 개념은 칸트와 같은 철학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자신이 깨어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 우리가 꿈을 꿀 때 믿기 어려운 와중에 현실 같을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깨어있을 때의 경험과 꿈을 꿀 때의 경험을 구별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없다. 데카르트는 우리가 꿈이라는 생각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에 산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성찰(1641)"의 끝에 가서는 적어도 회상을 할 때에는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모든 감각 기관으로 인한 정보가 거짓일지라도, 그 사유하는 나, 다시 말해 강력한 악마에게 '감각이 속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있을 수밖에 없기에 / 악마가 나를 속이고 있다 할지라도 나라는 존재가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일단은 사유하고 있고, 그렇기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실이다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데카르트는 본유관념과 인위관념, 외래관념을 분리하였다.
여기서 외래관념은 밖에서 오는 관념을 말하고
인위관념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하며,
본유관념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하는 관념을 말한다.
본유관념은 '삼각형의 꼭짓점은 세개이다.', '정육면체의 면은 여섯개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두 평행선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와 같은 것으로, 언제나 확실하게 참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말한다. 덧붙여 데카르트는 신의 관념도 확실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존재론적 증명을 통하여 신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론적 증명은 나중에 칸트의 비판을 받았다.
데카르트는 주체와 대상을 일치시키려 실체를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바로 연장과 사유이다.
연장은 구체적인 부피와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실체를 말하고,
사유는 연장과 달리 부피와 같은 것이 없는 실체를 말한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연장과 사유가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사유는 몸을 제어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몸과 사유를 이어주는 부분을 송과선으로 보았는데, 데카르트 이후 철학자들은 이 송과선을 몸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독일. (프로이센 왕국).
근대 계몽주의 정점 &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 확립.
"순수이성비판"(1781): 나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 인식론
"실천이성비판"(1788):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 윤리학
"판단력비판"(1790):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나? - 미학
18세기 철학 - 인식론 - 합리주의 / 경험주의
합리주의: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선험적 이성을 중시.
경험주의: 인간이 경험함으로써 지식을 얻는 귀납법을 중시.
→ 칸트는 두 사상을 통합한 "선험주의"를 주장. 지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식을 확장하는 '선험적(선천적: a priori) 종합판단' 을 긍정함.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의 이성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면서
인간 인식에 선험적 형식을 도입하는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을 시도하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인간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대상의 관념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대상이 있는 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그 대상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진리는 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하는 무엇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초경험적인 것을 이성으로 알려고 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가령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존재론적 증명 등을 비판하여 여러 형이상학적인 사상들을 배격하고자 하였다. 이 말은 형이상학의 영역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 할 수 없는 것으로, 어떤 형이상학적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칸트는 인간의 지성(Verstand)이 사물의 현상을 분류, 정리할 수 있으나, 그 현상 너머에 숨은 본질에는 이를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사물의 본질이나 신에 해당하는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에 따르면, 기존의 형이상학은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초감각적이고 초경험적인 것을 인식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칸트는 형이상학이 그런 오류에서 벗어나 이성의 인식체계에 대한 학문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칸트는 형이상학적인 신, 영혼들의 존재를 도덕을 다루는 과정에서 다시 요청하게 된다.
칸트는 윤리학을 연구하면서 주관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는’ 도덕이 아니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을 추구하였다. 모두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을 도덕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칸트는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선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은 마음 속에서 충동과 도덕이 투쟁한다고 보았다. 즉, 옳고 그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 속에서는 충동과 도덕심이 투쟁을 하며, 도덕이 이기면 선한 행동을 하고 충동이 이기면 그른 일을 하게 된다고 보았으며, 그렇다고 도덕이 충동을 없애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칸트는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의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어떤 결과를 얻거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으로서 명령’이 아니라, 명령 그 자체가 목적인 ‘무조건적인 명령’을 도덕법칙으로 제시하였다. 다시 말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적인 가언명령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의무로서 명령인 정언명령을 내세운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누구나 어떤 조건에서든 따라야만 하는 정언 명령은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명령, “네 의지의 준칙(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 하라”이다.
이 말은 쉽게 말해 누구든지 어떤 행동을 할 때 스스로 생각할 때 다른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명령,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 하라”이다.
칸트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자연론적인 인간관을 반대하였다. 인간이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본 자연론적인 인간관을 부정하면서, 그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을 강조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도덕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인격체로서,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에 합당한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칸트 철학의 근간: 인식론
인식론 - 심리 철학, 윤리학, 우주론, 신학
그의 철학에서 인식의 주체 '자아' 가 중요한 개념이지만
그는 결코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서 '자아'의 문제를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 → 헤겔이 극복하고자 노력.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독일. (뷔르템베르크 왕국).
칸트의 이념과 현실의 이원론을 극복하여 일원화하고,
정신이 변증법적 과정을 경유해서 자연·역사·사회·국가 등의 현실이 되어 자기 발전을 해가는 체계를 종합 정리하였다.
@ the fear of error is the error itself
헤겔은 '개념'의 문제, 다시 말해 인간 사유의 산물 자체를 독자적인 그 무엇으로 간주한 것에서
칸트의 인식론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인식론에 접근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개념'은
헤겔 철학에서 일종의 '논리적 범주'로서 스스로 운동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와 같은 개념의 운동은 여러 가지 헤겔 철학 용어로 풀이되는 바,
Idee (개념, 이념), Natur (자연), Geist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헤겔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용어가 도대체 어떤 뜻으로 쓰이며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헤겔은 정반합(正反合)의 개념으로 변증법을 정형화하였다.
헤겔의 이러한 변증법은 후 일 헤겔 좌파 철학자들을 거쳐 카를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변증법은 만물이 본질적으로 끊임 없는 변화 과정에 있음을 주창하면서
그 변화의 원인을 내부적인 자기부정, 즉 모순에 있다고 보았다.
원래의 상태를 정(正)이라 하면 모순에 의한 자기부정은 반(反)이다.
만물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운동하며 그 결과 새로운 합(合)의 상태로 변화한다.
이 변화의 결과물은 또다른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
이러한 변화는 최고의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된다.
* 헤겔은 정반합(正反合)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의 변증법을 설명하기 위해 하인리히 샬리베우스(Heinrich Moritz Chalybaus, 1796~1862)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표현 대신, '즉자-대자-즉자대자', 혹은 '긍정-부정-부정의 부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헤겔에게 절대 정신은 변증법에 의해 도달되는 최고의 지점, 즉 더 이상 변화될 필요 없는 최고의 위치를 뜻한다.
얼핏 보면 헤겔의 변증법적 운동과 고정화된 절대 정신은 상충되는 맥락이 있지만,
이러한 헤겔 철학의 전제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노에시스 노에세오스(noēsis noēseōs)개념을 차용하여
절대 정신은 순수 사유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사유로서 이러한 모순점을 논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헤겔은 세계사를 절대정신(이성)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헤겔은 인간의 역사 역시 변증법적 발전을 겪는다고 파악하였으며 그 결과 이성이 최고의 발전 단계에 이르러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상태를 역사의 종말이 명명하였다.
헤겔은 당대 독일(프로이센)이 역사의 종말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였다가 많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이 개념은 나중에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유명한 논문에 등장한 후 동명의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그의 사상은 국가, 종교, 철학을 아우르는 하나의 원리를 지향한다. 그래서 헤겔은 프로이센이라는 국가와 프로이센의 개신교 교리를 자신의 철학과 조화시키고자 했다. 헤겔의 철학은 국가를 절대정신이 구현된 완전한 전체로 보는 것은 물론, 프로이센이야말로 그러한 이상이 잘 실현된 보편국가라고 주장하였다. 국가를 긍정적으로 보는 헤겔의 철학은 프로이센 정부의 입맛에 매우 맞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프로이센 정부는 헤겔 철학을 권장하고 활용하였다. 이러한 헤겔 철학을 비판한 마르크스를 비롯한 청년헤겔학파들이 프로이센 정부의 탄압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또한 후로 그의 저서는 그의 저서에서 전체주의적 느낌을 받은 많은 철학자들에게 의해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면 실존주의인 키에르케고르가 있다.
카를 마르크스. 독일 (프로이센 왕국, ~1845)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정치이론 → 마르크스주의: 인간 사회가 계급투쟁을 통해 진보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계급투쟁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와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으로써 나타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지 여부다.
생산수단은 부르주아에 의해 통제되며,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노동자로 부려먹힌다.
소위 사적유물론이라는 비판이론에 의해
마르크스는 과거의 사회경제체제들이 그러했듯
자본주의 체제 역시 내재된 결함에 의해 내부적 긴장이 발생할 것이며
그 긴장에 의해 자멸하고 사회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체제로 대체될 것이라 예측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불안정성과 위기취약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적대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게 된다.
의식화된 노동자들은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마침내 계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할 것이라는 것
이 마르크스주의의 골자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예측이 현실화되기를 앉아 기다리지 않고,
노동계급이 혁명적 행동으로써
자본주의를 거꾸러뜨리는 사회경제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저술·출판작업에 평생 매진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독일.
권력의지를 중심으로 하는 니체의 일원론은 / 근대 철학의 이원론과 배치되며 / 주체와 대상으로 구분되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탈피하였다. 니체는 진리라는 것은 없으며 단지 진리를 추구하는 힘만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상 세계는 허구이며 오직 현상 세계만이 존재하고, 결과가 없이 언제나 과정으로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는 이성의 철학이 아닌 반이성의 철학,
실체의 철학이 아닌 관계의 철학,
정적인 철학이 아닌 동적인 철학,
계몽의 철학이 아닌 허무의 철학을 주장하였다.
# 퇴폐성 비판
그는 기존의 도덕적 세계관이 삶을 옥죄고 있다고 인식했다.
모든 시대의 현자들은 삶에 대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삶이란 의미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 "우상의 황혼".
# 신은 죽었다.
신의 죽음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가치의 상실을 의미한다.
'신의 죽음'이란, 종교 혹은 이상주의 등의 신앙이 상실된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달리 말해, '신의 죽음이란 허무주의의 도래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최고가치의 상실과 허무주의의 출현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
'삶의 최고가치가 상실된 상태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니체는 탈아의 도덕을 뛰어넘는 인간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를 위버멘쉬라 부를 수 있다. 위버멘쉬는 또한 종래의 안일한 인간을 뛰어넘은 인간유형이다. 이렇게 보면 위버멘쉬는 종래의 성(聖)과 속(俗)을 뛰어넘는 인간이다.
# 허무주의 (Nihilismus)
니체는 "유고"에서 허무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허무주의: 목표가 결여되어 있으며 : '왜?'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결여되어 있다. 허무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최고 가치들이 탈가치화하는 것.'
니체가 말하는 허무주의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능동적 허무주의 (Der active Nihilismus) 와 수동적 허무주의 (Der passive Nihilismus).
'수동적 허무주의'란 염세주의라고 생각하면 쉽다. 허무감에 사로잡힌 상태를 뜻한다. 달리말해, '허무하다', '무의미하다', '무가치하다' '없다(니힐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태의 인간은 결과적으로 인생의 의미를 잃고 향락주의나 물질주의에 빠져들게 될 공산이 크다. 외부에서 신으로부터 주어진 의미가 없기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주어진 의미를 찾기에 수동적이다.
다음으로, '능동적 허무주의'란 '없다는 느낌(=무의미하다는 느낌 = 무가치하다는 느낌 = 니힐하다 = 허무주의)'에서 더 나아가 외부로부터 주어진 의미를 찾기보다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가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의미가) 없으면 만든다는 식이다.
짧게 말해, (유럽에서) 가치와 규범과 의미를 제공해주던 일체가 - 그걸 신이라고 불러도 좋고,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나 칸트라고 불러도 좋다 - 그 확실성을 잃게 되었기에 허무주의(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도래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의 차이인 것이다.
# 위버멘쉬 (Übermensch)
위버멘쉬는 어원적으로 '뛰어넘는(Über) 인간(mensch)'을 뜻한다. 다시 말해 극복하는 인간이며, 극복함으로써 창조하는 인간이다.
위버멘쉬는 근대적 가치와 도덕 및 신앙을 뛰어넘는 인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종래의 규범들은 인간에게 해로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위버멘쉬는 탈아의 도덕을 극복해내는 인간이다. 이를테면 극기복례 혹은 순교자 개념을 극복해내는 인간이며, 그럼으로서 창조해내는 인간이다. 위버멘쉬 개념은 '풍습의 도덕'과 대립될 뿐 아니라, '인간말종(Der letzte Mensch)'과도 대립되는 개념이다. '인간말종(Der letzte Mensch)'이란 현실에 안주하는 인간형 혹은 권력욕에 물든 인간을 가리킨다.
위버멘쉬는 초월적,신적인 힘을 갖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종래의 탈아적 가치를 극복하고 새 것을 생성시키는 인간을 의미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오스트리아.
프로이트가 영향을 받은 사람: 빌헬름 폰 브뤼케(그에게 신경해부학을 배움.)
공동 연구: 장마르탱 샤르코, 오제프 브로이어, 카를 융, 알프레트 아들러
근대 계몽주의 → 프로이트
당대의 지식인들은 정신과 육체를 분리한 후, 의식과 정신은 신성시했으나 육체는 부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치료 대상으로 보고 본능적인 욕구나 불건전한 면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정신과 의식이 항상 같은 것이 아니며, 무의식이라는 부분이 존재한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이성이라는 옷을 입은 욕망의 덩어리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대중화함.
정신은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구성되었다. / 무의식, 억압, 자유연상, 히스테리
이드, 자아(에고), 초자아 라는 개념을 제시함.
프로이트의 심리 성적 발달 단계: 구강기 - 항문기 - 남근기 - 잠재기 - 성욕기
자기 방어 기제: 억압, 동일시, 부인, 반동형성, 투사, 주지화(지성화), 치환(전위), 승화, 합리화, 고착, 퇴행, 보상.
삶을 향한 본능, 리비도, libido, 성의 욕구 / 죽음을 향한 욕구, 타나토스, thanatos, 공격성.
라캉. 프랑스.
정신의학자, 정신분석학자.
무의식이 언어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 이론의 재구성.
자아는 이상적 단일성, 완결성을 표하며, 또한 자아는 자아 자신이 아닌 '이미지'와의 동일시에 의한 결과다.
그는 ego가 6개월 ~ 18개월 사이 유아기에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고,
유아는 타자를 비추는 거울을 통해 그 ‘환영’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그에 대해 ego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ego는 진정한 자아가 아닌 '오인의 자아'로,
안정적 중심을 결여한 주체로서 나타나게 된다.
때문에 완전성의 이미지를 추구하게 되며,
또한 완전성의 이미지와 동일시한다고 본다.
이러한 이론은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는 주체의 불완전성을 제시한다.
라캉은 '주체'를 문화(언어와 욕망) 상호작용의 산물로 인식하며,
인간의 욕망이 타자와의 상호주관적 관계를 중재하는 '언어 • 상징 체계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난다고 보았다.
즉, 라캉은 주체가 사회적 위치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 혹은 상징적 '질서'로 들어가야만 하며,
때문에 인간의 '실질적 주체'는 억압되어 나타난다고 보았다.
인간의 주체가 상징적 영역으로 들어갈 때,
정체성을 지닌 독립된 나로서 언어속의 한 기표(언어적 표시)를 담당하지만,
동시에 '기의(언어적 의미)'로의 접근은 금지당한다.
즉, 인간의 주체는 '분할'된 존재로서,
구조주의 영역에서 상징적으로 제시되는 기표의 위치를 가지는 주체이지만,
기의에서 그의 본질적 욕망은 결여되는 것이다.
라캉은 이러한 구조주의 언어 설명을 통해,
주체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은 결합할 수 없으며,
주체는 본질적 욕망을 실현할 도구를 찾아 동일시하지만,
결합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적 욕구는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다는
욕망의 '환유적 운동'을 제시했다.
@ 기표가 기의에 닿지 못하고 언제나 미끄러진다~
* 기표와 기의
기표란 말이 갖는 감각적 측면으로, 예컨대 바다라는 말에서 "바다"라는 문자와 /bada/라는 음성을 말한다.
기의는 이 기표에 의해 의미되거나 표시되는 바다의 이미지와 바다라는 개념 또는 의미 내용이다.
기표와 기의를 하나로 묶어 기호라고 한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 즉 의미작용(signification)은 그 관계에 필연성이 없다(기호의 자의성).
예컨대 "바다"를 "바다"라고 쓰고 /bada/라고 발음하는 데 있어 필연성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그것이 있었다면 모든 언어에서 바다는 /bada/로 발음되고 있을 것이다.
필연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해하는 체계 속에서는 필연화되고 있다.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바다"라는 글자를 보거나 /bada/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거기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의 근저는 기본적으로 같다.
또 "바다"가 왜 /bada/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매우 어렵다.
고틀로프 프레게가 지적했듯,
기의, 즉 "의미 내용" 또는 "개념"은 "지시 대상"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지시 대상"은 레페렌트(referent)라 하며, 기의와는 구별된다.
라캉은 신분석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현실 속에서의 남성 생식기가 아니라 이 기관이 환상 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페니스'라는 용어보다는 '팔루스'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따라서 라캉은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기관을 '페니스[음경]'로, 이 기관의 상상적이고 상징적인 기능을 '팔루스[남근]'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 라캉은 1961년에 계속하여 상징적인 팔루스는 타자 속의 기표의 결여의 장소에 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정상적인 기표가 아니라 욕망 자체의 실재적인 현전이다. 1973년 그는 상징적인 팔루스는 '기의를 가지지 않는 기표'라고 주장한다.
@ the symbolic phallus is 'the signifier which does not have a signified'
*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
라캉은 자신의 정신분석학에 세 가지 계를 설정한다.
먼저 상상계는 사회와 구별되는 개인의 주체적인 영역을 가리킨다.
인식이 없으면 어떠한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모두 상상계의 인식을 통해 개인에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의미에서 상상계는 인간 개인에게 가장 근본적인 영역이다.
다음으로, 상상계의 반대에 상징계가 서있다. 상징계는 말 그대로 현실의 영역이다.
라캉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사회의 의미화를 벗어나려는 개인의 투쟁으로 파악한다.
다시 말해, 라캉은 상상계가 상징계에 처음 포섭되는 과정은 상징계의 일방적인 우위로 이루어지며, 이후에도 상징계는 상상계보다 앞서 상상계의 의미를 규정지으며 절대적인 위치에 남아있는 듯 보인다.
다른 한편, 라캉에 있어 '욕망'이라는 개념도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상징계가 상상계를 포섭하는 과정은 상징계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상계가 궁극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위치는 남아있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상상계는 '결여'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상상계는 자신과 세계의 안정적인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점을 꿈꾸게 되고, 이것이 바로 욕망이라는 형태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실재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실재계는 상징계의 의미화 작용이 실패로 돌아가는 지점을 가리킨다. 상징계가 말할 수 없는 영역을 통해 상상계는 거꾸로 스스로 절대적인 위치라고 말하는 상징계를 '의심'하게 된다.
슬라보예 지젝 등은 이 개념[실재계]이 상징계와 상상계 사이의 지점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즉, 상징계의 의미화 작용이 실패하지만 / 상상계가 인식할 수 있는 장소에 / 실재계가 서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욕망이 향하지만 상징계가 충족시켜 줄 수 없는 지점, 바로 그곳에 실재계가 위치한다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라캉 / 진리는 일종의 허구처럼 구조화된다.
포스트 구조주의 / 진리의 차원을 텍스트의 진리-효과로 환원시킨다.
라캉 / 환유적인 미끄러짐은 은유적인 절단에 의해서 지탱되어야 한다.
포스트 구조주의 / 라캉의 이론은 현전의 형이상학이 각인되어 있는 거다.
데리다 / 라캉이 결여 자체에 대한 긍정을 통해 결여를 축소하려는 역설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포스트 구조주의 / 어떠한 텍스트도 완전히 비형이상학적일 수는 없다.
지젝 / 포스트 구조주의는 결국 시학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텍스트의 과정이 얼마나 우리가 '말하려고 의도했던 바'를 항상 뒤집는가를 우리가 느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 하지만 그 근원에는 순수하고 간결한 메타언어에 의해 별 어려움 없이 진술될 수 있는 명확히 규정된 이론적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
모더니즘 / 근대의 이성은 규칙, 권위, 규율, 통제 등을 의미했다. 1900년대 초에는 "모든 인간이 합리적이며, 합리성은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모더니즘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다.
→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근대의 냉전을 겪으며 합리성에는 한계가 있음이 밝혀졌고 합리성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포스트 모더니즘 / 이에 "이성 자체가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이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포스트-모던(탈현대) 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미셸 푸코. 프랑스.
푸코의 제자: 데리다.
철학자로서의 푸코는
당대 시사 문제에 관하여 그 자신이 취한 입장과,
그리고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그리고 조류 참여에 대한 정치적 적극성 - 특히 LGBT 운동 - 과 뗄래야 뗄 수 없다.
고로 푸코는 정적이고 객체화된 의미의 하나의 정체성보다는 주체화의 과정으로서의 삶의 방식에 관심을 보인 듯 하다.
주체성이라는 주제(와 여타 주제들)에 관하여, 푸코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두 철학자는 바로 니체와 하이데거이다.
계보학이란 계보(系譜)·계도(系圖)에 관한 진위를 밝히기 위한 학문을 말한다.
푸코는 1970년대 전반에 출판한 일련의 글과 대담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로부터 빌려온 계보학이라는 단어에 관한 자신의 개념을 규정하고 정교하게 했다.
푸코는 계보학은 '사물은 어떠한 본질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투쟁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수립하고 그 지식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게 만드는 넓은 지식과 지엽적인 기억의 결합
을 계보학이라는 용어로 부르자고 주장한 것이다.
이 때의 계보학은 역사가 침묵시켜 왔던 사람들의 묻혀진 텍스트를 복원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전의 역사적 절차가 무시했던 방법들을 이용한다.
고고학이 한 종류의 물질적인 것,
즉 어법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계보학은 또 다른 것,
즉 육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푸코가 1970년대 고고학 대신, 니체의 방법을 계승하여 내세운 계보학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시대의 지식의 구성 조건으로 당대의 '권력'을 고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계보학적 방법을 적용한 대표적 작품이 감옥의 역사를 연구한 "감시와 처벌"(1975)인데,
지식의 성립 조건으로 당대의 권력이 고려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 제레미 벤담의 파놉티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