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
우리의 건축은 무엇을 했을까요...
건축은 이상과 현실 두 양극을 끊임없이 오갔다. ...
설계가 끝나기도 전에 땅파기 시작했던 현실이 있었다.
바우하우스(Bauhaus)의 설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Adolph Georg Gropius, 1883-1969).
예술의 역사에서 국가는 대개 부정적인 인자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지난 세기 한국에서도 국가는 건축가에게 터무니 없는 것들을 요구하는 악역으로 그려지기 일쑤다. 그러나 국가의 행위를 괄호 치고 한국 현대 건축의 역사를 서술하기란 힘들다. 국가는 최대의 건축주였을 뿐 아니라 건축이란 개념과 영역이 미약하나마 자리잡는데에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정권을 비호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
1장. 예술이 되기를 바란 건축.
1950년대. 파벌을 형성할 만한 진영조차 갖추지 못할 정도로 '건축'은 작은 영역이었다.
무엇이 건축가가 작가로서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갖게 해 주었을까? 자의식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 없이는 생겨날 수 없는 법이다.
대타자. the Other. 자크 라캉의 용어. 여기서는 설계를 하고 건물을 짓는 등의 일을 사회적으로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해주는 기제.
김정식. 정림건축 설립. 동료들과 봉은사를 실측해 그린 도면으로 국전에 출품해 수상했다.
"공모전이라는 성격을 이용하여 공공건물의 건축을 위한 안을 공모"하는 것이 건축부 신설의 한 가지 목적이었다.
말 그대로 '재건'이 당대의 제일가는 가치였던 시절, 권력은 건축을 호출했다.
권력은 무엇보다 뭔가 사업이 일어나고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는 재건의 '이미지'가 필요했다.
군사원호센터 -> '종합원호원'으로 개원.
2장. 중앙정보국, 그리고 문예와 건축.
건축 내부에서 경계를 짓는 일은 지식의 축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전문 잡지였다.
주요한이 이끈 "새벽".
1966.11. 김수근의 "공간". 창간호 판권에 발행인으로 이름을 올린 이는 석정선이다.
*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는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 즉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가 경제 체제를 관리하는 사회 체제.
"공간"의 창간과 간행에 기술개발공사가 긴밀히 연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3장. 신생 독립 공화국의 표상.
1966-67.
종합박물관.
전통 건축의 요소를 차용해라.
-> 시대 착오적 결정이다. 보이콧! (시대에 적합한 프로그램, 재료, 양식으로 박물관을 지어야 한다.)
-> 결국 그들이 상정한 기념비적 건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음.
정부종합청사. (갈등 없었음.)
현대건축이 1960년대 말 한국에서 무엇을 생산할 수 있었고, 없었는지를 보여줌.
... 나아가 한국성이라는 "당위"가 먼저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건축이 어떻게 이를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오인하게 했다. 그러나 오히려 매번 비슷하게 되풀이된 갑론을박을 통해 한국성이라는 담론이 생겨난 것이라고 해도 좋다. 한국성은 그 자체로 결코 자명한 개념이나 주어진 의미가 아니라 수없이 덧씌워진 담론의 결과다. 한국성을 둘러싼 건축의 문제는 기념비성의 문제였고, 한국 현대 건축의 '무능'과 '불신'(동시에 관료에 대한 건축가들의 불신)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다.
... (중앙일보 문화부 김상기) 그보다는 썩 좋은 건물을 아직 짓지 못했기 때문에 민중이 건물을 보는 눈을 뜨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겁니다.
Precast Concrete, Spandrel 로 나뉘어 입면에 리듬감 부여.
상징성을 드러내는데 취약한 현대건축이 지닌 난점이 여기서도 되풀이되었다.
그들은 모더니즘을 추구하기도 했지만 모더니즘밖에 할 수 없기도 했다.
... 1960년대 후반 한국의 건축가들은 시카고 트라분 현상 설계에 참여한 발터 그로피우스에서 자신의 자아 이상 ego ideal 을 찾았다.
독일 지들룽(Siedlung). 독일 등 중부 유럽의 집합주택.
만프레도 타푸리(Manfredo Tafuri, 1935-1994). 독일 산업사회에서 지들룽이 담당한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미국 대도시에서 표현주의적 마천루가 대신했다면, 즉 이익사회와 공동사회의 구도 속에서 건축을 통해 후자의 가능성을 꿈꾼 것이라면, 신즉물주의적인 그로피우스의 마천루는 "생산 세계에 근간한 구조의 이미지라는 상징적 형태"였다. 어떤 참조도 거부하고 이미지로서 자신의 자율성을 주장한 것이다.
도미노 프레임에 따른 자유로운 입면의 논리는 군인 기술 관료에게 설득의 대상도, 건축가가 고수해야 할 이념적 가치도 아니었다. 이후 논의는 거의 전적으로 평면과 구조에 집중되어 전개되었다.
기둥, 보, 바닥이 모두 일체가 되는 콘크리트 라멘 구조가 국내 실정에 적합한 구조라 주장.
... 이는 정통성이 없는 군부 정권의 문화 프로젝트인 동시에 국민 국가 형성에 없어서는 안 되는 '신화 만들기'였다.
시간을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은 한국 사회가 통과해 나가야만 했던 의례였다. (시간 = 역사, 공간 = 구체적인 장소) ... 이 과정은 건축의 생산과 재현을 분리하는 기제였다.
레비 스트로스.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1막 대사. 여기서 시간이 공간으로 바뀐다.
4장. 계획의 대상이 된 도시.
(경제기획원) 경제개발5개년계획
(건설부) 국토종합개발계획, 광역수도권계획
(서울시) 서울도시기본계획, 도심재개발 및 각종지역계획
도시의 일부를 '실제로' 전면 개조할 수 있는 기회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진자 운동을 부추겼다.
시간이 갈수록 상상력은 생산의 조건에 맞추어 순화되어 갔다.
1966. 광복절. 서울도시계획 전시 개최. 김현옥 서울 시장.
스펙터클하지만 어떤 현실성도 없는 가상의 백지 계획. 그렇기에 어느 것보다 유토피아적인.
1966. 서울도시기본계획이 밝히는 전제.
1) 서울은 계속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2) 한국의 남북 분단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나 결국은 통일될 것이다.
8) 대재해는 미리 예방될 것으로 본다.
... 대단히 미래지향적인 확신으로 가득했다.
... 의지에 따라 사회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계획으로 구체화됐다.
... 재개발이라는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현대화되어야 할 예로 재래시장을 들었을 뿐.
... 오스왈도 내글러(1967.06.24) 그린벨트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며 행정비의 낭비와 공사간의 대립을 야기할 수 있음을 명시했다. 내글러와 HURPI의 대안은 서울과 인천을 선적으로 연결하는 것이었고 이는 기술개발공사의 김수근 팀에 영향을 미친다.
* HURPI는 ‘주택·도시 및 지역계획 연구실’(Housing, Urban and Regional Planning Institute, 이하 HURPI)로, 1965년 5월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과 건설부의 협정에 의해 설립된 건설부 산하에 소속된 도시설계조직이다.
분산시킨다고 분산이 되는 도시 기능은 어디도 없다. 도심의 도시 기능을 계속적으로 고밀도화 해야 한다.
기술개발공사 보고서에서 일관되게 유지된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자동차와 보행자를 분리하는 보차분리와 지구 전체를 일괄 개발하는 방식이다.
KIST 도시계획연구실. 건축가의 언어와 경제학자의 언어는 한 보고서에서 어색하게 공존했다.
김중업. 삼일빌딩.
도심 재개발 사업의 이슈가 주거나 인구 이동과는 무관한 자본 문제로 바뀌고 있음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했다.
1981.09.30. 1988 서울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됨. 외국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서울이 급히 필요했다.
사업신청 이후 공람 기간을 1년에서 30일로 대거 단축하고 ...
각종 세금 면제하는 특혜를 부여함. 재개발 지역, 한국에서 가장 지가가 높은 서울 도심에서 땅을 팔거나 사도 세금을 면제해 준 것이다.
마포로 주변. 서울의 포템킨 빌리지.
* A Potemkin village is a construction, literal or figurative, that provides a façade to a situation, to make people believe that the situation is better than it actually is.
... 점차 도심 재개발은 재벌의 부동산 사업이 되어갔다.
1990. 사후 평가. 서울시 도심재개발 도시설계연구. 지가 변화 = 서울시 평균 상승률 3~8배.
도렴 12지구의 경우. 1974 -> 1987년. 86배...
도심 재개발은 작은 필지와 다수의 토지주로 이루어진 서울의 도심이 대형 필지와 소수의 토지주로 재편되는 과정이었다.
5장. 중대형 설계 사무소의 탄생.
김경수["건축과 환경"]가 두 거장[김수근, 김중업]의 다음 세대를 호명하면서 개인의 이름이 아닌 단체의 이름[원도시 건축, 정림 건축]을 찾은 것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이전 세대가 박물관과 시민 회관 등 국가주도문화시설 건축을 수행하면서 건축의 예술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면, 정림 건축과 원도시 건축은 행정과 관료체제를 뒷받침하는 시설, 기업 프로젝트와 함께 커 나갔다.
삶의 양식과 건축의 언어가 연결 가능한 것인지를 의심하지 않는 비평가의 시선...
원도시 건축. 피닉스 호텔, 대한화재보험, 한일은행.
John C. Portman의 Westin Bonaventure Hotel(1974-1976 시공).
https://en.wikipedia.org/wiki/Westin_Bonaventure_Hotel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의 Lever House.
https://en.wikipedia.org/wiki/Lever_House
https://www.som.com/
미스 반 데 로에의 Seagram Building.
https://en.wikipedia.org/wiki/Seagram_Building
정림건축이 고민한 문제... 도시민에 좋은 시각 효과를 주기 위해서는... 도시의 주요한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선 1600m 이상의 거리에서도 시민이 외환은행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배려를 하여야 할 것이다.
콜린 로우(Colin Rowe, 1920-1999)는 소위 시카고 프레임(Chicago Frame)을 이용한 고층 건물은 평면이라고 할 것도 없는 간단한 설계라고 말했다.
[콘크리트 라멘 구조의 저층 건물]이 부족한 재료와 미흡한 디테일을 현장에서 건축가의 역량과 시공자의 임기응변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면, [철골 구조의 고층 오피스 빌딩]은 전체적인 생산 체계 안에서 거의 대부분의 것이 결정되어야 한다.
한국 건축가가 아니라면 설계 사무소의 조직을 군대의 조직에 비유하지 않았겠지만 ...
외환은행 현상 설계 당선 이듬해인 1974년 정림건축의 조직은 별다른 부서 구분 없이 32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술 부문의 내부화를 추구한 정림건축이 조직화의 모델로 삼은 회사는 당시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성장한 대형 사무소 웰턴 베켓(Welton David Becket, 1902-1969) 이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Welton_Becket
윤승중. 한일은행 본점.
에로 사리넨의 CBS 방송국 사옥.
한국 건축가들은 19세기 시카고의 루이스 설리번에서 20세기 LA의 존 포트먼에 이르는 100년의 과정을 15년여 만에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이 시기는 한국 설계 사무소가 분화하는 과정과 거의 일치하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다른 종류의 건축지식과 설계조직을 요구한 도심 재개발 사업과 오피스 빌딩 프로젝트를 맡았는지 여부는 아틀리에와 대형 설계 사무소를 가르는 한 기준이었다.
6장. 한국성이라는 성배.
1960년대 문화 정책의 방점: 문화재 보호.
1976(유신 정권). 문예중흥5개년계획.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개발해 민족의 정체성을 굳건히 확립. 전통성을 재구성해내는 것이 일차적 목적.
김원. 목적적 조형 의지 대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찾아야 한다.
1973. 국립극장 개관.
민족이라는 단일화된 주체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역사의식이 필요하고, 이 역사의식을 구현하고 있는 현장으로서의 문화재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획득한 역사의식도 다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새 역사 창조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순환 논리.
독립기념관. 삼정건축설계연구소. 김기웅 작.
한국인이라면 누가 봐도 단번에 한국 건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했다. 현대 건축의 추상적이고 지적인 표현이 지니는 제한적인 표상이나 전통에 대한 현대적 해석 등이 들어설 가능성을 봉쇄했다.
POST. 지금 처해 있는 현실이 예전과 다르다는 인식은 근대적 역사의식의 근본 테제이기도 했다.
건축의 근대성이 정립도 안 된 상황에서 탈근대 건축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은 더 큰 아이러니이다.
로버트 벤추리. https://en.wikipedia.org/wiki/Robert_Venturi
마이클 그레이브스. https://en.wikipedia.org/wiki/Michael_Graves
찰스 젱스.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Jencks
건축은 다시 한국적인 것과 민족성을 뚫고 나가야 했다.
자본주의의 포섭을 한사코 거부하려고 한 미스의 'almost nothing'이 임대 면적의 최대화를 추구하는 상업 건축에 의해 쉽사리 전유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7장. 건축의 자율성을 향하여.
1980년대 말-90년대 초.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야기입니다.)
아이디어를 묻는 현상 설계에 맞추어 개념 스케치 정도의 계획안을 제출한 김수근에 비해, 평면 계획까지 거의 마친 상태의 안을 제시한 김태수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안영배, 한국 건축의 외부 공간.
그때나 지금이나 산 한가운데 미술관을 지으면서 대지에 맞서는 태도를 취할 건축가는 많지 않을 것이므로 이 태도에서 계획의 특징을 읽어 내기는 어렵다.
이진희 문공부 장관은 김태수에게 한국적인 요소를 계속해서 요구했으나, 한국의 복잡한 문화-정치적 네트워크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재미' 건축가 김태수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표상해야 하는 건물이 건물 이외의 것을 말하지 않자 다른 것이 요구되었다.
중앙홀이 구겐하임 미술관(프랭크 로이트 라이트)와 닮았다는 오해를 받자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급히 기획되어 중앙홀에 자리해 지금까지 이어진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미술관 https://en.wikipedia.org/wiki/Kunstsammlung_Nordrhein-Westfalen
슈튜르가르트 신국립미술관 https://en.wikipedia.org/wiki/Staatsgalerie_Stuttgart
국립현대미술관의 건축적 의미는 국가라는 대타자의 호명에서 거의 온전하게 벗어나 있었다.
8장. 국가는 건축의 적인가.
1988 올림픽. 김수근 - 주경기장, 김중업 - 올림픽 공원, 평화의 문.
국가와 체제 바깥에 저항의 진지를 마련하고자 했던 문학이나 미술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건축은 여전히 국가-자본주의에 얽매여 있었다.
타푸리, 잡지 콘트로피아노(Contropiano), 건축 이데올로기 비판을 향하여, 1969.
Verso una critica dell'ideologia architettonica.
타푸리, 건축과 유토피아, 1973.
Architecture and Utopia: Design and Capitalist Development.
Progetto e Utopia: Architettura e sviluppo capitalistico.
그가 추구한 것은 노동 계급이 자본의 모순이 아닌 적대가 되는 것이었다.
프랑코 포르티니, 비둘기처럼 영리하게(astuti come colombe).
https://en.wikipedia.org/wiki/Franco_Fortini
비평가는 자본주의 발달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의 원천이 되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배 계급의 권력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보적 지식인조차 현실에 만족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를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객관적인 현상을 다루려는 시도, 모든 개혁적인 시도를 거부하고 에른스트 블로흐나 아도르노 식의 부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포르티니의 입장이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Ernst_Bloch
https://en.wikipedia.org/wiki/Theodor_W._Adorno
빌 리제베로, 건축의 사회사, 근대 건축과 디자인: 배경 분석을 통한 건축사.
전문가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진실로 관여하고자 한다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데에 객관적으로 관여하는 대중계급조직의 일원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해야할 필요성과 가능성을 주관적으로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국가의 계획은 (네그리가 우려한) 노동자의 자율성만 앗아간 것이 아니라, (타푸리가 염려한) 건축의 이데올로기 기능을 빼앗았다고 보는 것이 타푸리의 기본 전제다.
네그리. https://en.wikipedia.org/wiki/Antonio_Negri
이후 건축의 흐름은 아방가르드의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었다.
에필로그: 광장에서 규방으로.
사회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학과 철학이 떠난 전선을 자본과 권력을 고객으로 삼는 건축이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건축이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념과 입장을 날카롭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었다.
자본의 자유가 시대 논리로 귀결되던 1990년대 초...